Golgulsa/골굴사에서 Golgulsa

원효대사

골굴사 2016. 8. 12. 00:50



=== 죽음 ===
원효는 당시 전하던 거의 모든 경론(經論)에 대해 주석(註釋)을 하여 100여 종의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것은 20부 22권뿐이다. 이 중 《대승기신론소》 2권, 《금강삼매경론》 3권, 《십문화쟁론》 2권 등은 원효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원효 사상의 핵심인 일미(一味) 화쟁(和諍)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원효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승려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식학(唯識學)이나 불교논리학 등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는 한국의 무속신의 하나로도 숭배되는데, 그 자세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해골의 물을 마신 것을 죽음을 극복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추정한다.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70세 되던 해 음력 3월 30일 혈사(穴寺/경주시 양북면 소재 골굴사)에서 입적에 들었다. 뒤에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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