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gulsa/골굴사에서 Golgulsa

골굴사를 주제로 한 조선시대 한시. 기행문

골굴사 2015. 8. 10. 13:38

문헌 속 골굴사 


1. 골굴 조선 후기의 시인 유하(柳下)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시이다. 
  《유하집(柳下集)》에 실려 있다.

骨窟

설산이 천 길 높이로 솟았고  雪山聳千仞
천연 골격 두 바위 우뚝하도다  兩巖立天骨
하나의 기운이 만고에 쌓여  一氣積萬古
바윗돌이 마침내 갈라졌어라  雲根遂瓜裂
새기고 그린 수많은 기이한 형상  刻畫多異狀
중간에 오묘한 굴이 크게 열렸네  中闢太玄窟
사람 공력이 자연의 조화를 도와  人功補造化
처마 얹어 빈 하늘에 잇닿았도다  架簷接空缺
각 방면의 형세에 기대어서는  因依各面勢
여섯 개 선방으로 나눠 만드니  判作六禪室
십 홀 십 홀(笏):홀은 척(尺)과 같은 뜻으로, 십 홀은 사방 일장(四方一丈) 정도이다.
물건을 넣을 크기에  度能十笏大
한 자리 평상 겨우 들어가누나  容得一床劣
높은 공중엔 새 둥지 깃들었고  懸空鳥巢寄
감싼 바위엔 벌집이 벌렸도다  抱石蜂房列
하늘이 자금색의 형상 이루니  天成紫金相
이끼 벗겨진 벽엔 부처님 계시네  苔剝壁面佛
스님은 적막하여 살지 않는 듯  居僧寂若無
봄풀이 자라나 바위 길 덮네  春草巖逕沒
배고프면 향기로운 솔잎을 먹고  飢餐松葉香
다람쥐와 더불어 동굴에 사네  鼯鼠與同穴
남쪽으로 누대 하나 바라뵈는데  南臺一相望
빼어난 풍경이라 재삼 감탄하네  三歎叫奇絶
높은 창문은 하늘로 반쯤 열렸고  高窓天半開
조도는 나무 끝에 매달려 있네  鳥道掛木末 
부여잡고 올라 잠시 문밖을 보매  攀躋乍窺戶
어슴푸레한 것이 마치 귀신인 듯  慌惚疑鬼物
위태한지라 감히 머물지 못하고서  危乎不敢留
발걸음 돌려서 낙조를 보러 가니  回策視落日
흰 구름은 마치 나를 부축하는 듯  白雲似扶我
너울너울 춤추며 산을 내려왔네  翔舞下嶻嵲


2. 골굴 조선 후기의 학자 시암(時庵) 남고(南皐, 1807~1879)의 시이다. 
  《시암집(時庵集)》에 실려 있다.

骨窟

깊은 굴이 입을 벌려 집을 이루니  邃窟呀成广
사람이 번거롭게 지을 것 없네  不煩土木功
귀신의 조각임을 분명 알겠거니  判知神鬼刻
그대로 석왕의 궁궐을 만들었네  仍作釋王宮
처마 세워 암벽의 물방울 받고  簷爲承巖溜
문을 달아 바위의 구멍 메웠네  門因補石空
천 년의 흥망성쇠에 감개하면서  千年興廢感
해 비낄 제 봄바람에 기대어보네  斜日倚東風


3. 골굴십운 조선 중기의 문인 옥봉(玉峯) 권위(權暐, 1552~1630)의 시이다. 
  《옥봉집(玉峯集)》에 실려 있다.
  - 동도(東都) 동도(東都):경주(慶州)를 가리킨다.
   에서 지은 시이다. -

骨窟十韻 - 東都作 -

험한 길을 지나 그윽한 경치 찾아  涉險尋幽勝
아득히 관문 하나를 넘어왔노라  悠悠越一關
빽빽한 숲 아래에 길은 희미하고  逕微䕺樹下
어지러운 바위 사이 말은 넘어지네  馬躓亂巖間
바위에 하늘이 만든 굴이 있나니  有石天生穴
어느 해에 교묘히 깎아내었나  何年巧斲剜
벼랑을 따라 그대로 집을 얽으니  緣厓仍立架
그 형세가 또한 산을 바라보네  面勢且看山
작은 방은 겨우 몸 하나 부칠 정도고  斗室纔容膝
밭으로 난 창은 내다보고 웃을 정도네  田窓可啓顔
서까래를 엮어서 조도와 연결하고  結椽通鳥道
바위를 파내어 원숭이처럼 매달리네  鑿石費猿攀
이름 쓴 현판은 삼면에 걸려 있고  名額開三面
단청은 사방을 한결같이 비추도다  丹靑煥一般
거하는 스님은 마음이 절로 편안하고  居僧心自逸
지나는 손님은 뜻이 외려 한가하네  過客意猶閒
지팡이 짚고서 번거로이 올라가서  扶杖煩登陟
시를 읊어 하늘이 아낀 비경을 드러내는데  吟詩破秘慳
비낀 해가 그림 속의 풍경 같아서  斜陽如畫裏
오래도록 앉은 채 돌아갈 줄 모르네  坐久不知還


4. 골굴 조선 후기의 문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시이다. 
《식산집(息山集)》에 실려 있다.

骨窟 

함월산 서쪽 끊어진 산기슭 한 면에 석굴 12개가 있다. 처마를 얽고 창을 내어 석실을 만들었는데, 위 아래로 첩첩히 쌓아 제도가 매우 기이하다.
含月西斷麓一面 有石窟十二 架簷開牖作石室 上下疊累 制甚異

깊은 계곡에는 구름이 절로 희고  邃谷雲自白
성긴 숲은 봄인데도 아직 덜 푸르네  踈林春未靑
갑자기 아침 신기루가 일어난 듯  忽疑朝蜃起
천지의 변화에 신령함이 모였어라  變化集神靈
스님은 썩은 나무의 굼벵이 같고  僧如朽木蠧
바위굴엔 높은 처마 설치하였네  嵌穴排巖欞
부여잡고 꼭대기로 걸음 옮기니  攀援武轉絶
석상은 바위 병풍으로 이어지누나  石牀仍石屛
기괴한 그 모양이 불가사의하니  詼詭不思議
조화에는 일정한 형상이 없네  造化無常形
빼어난 경치라 더할 게 무에 있나  奇觀孰有加
해가 저무는데 귀로를 지체하네  日晏滯歸程


5. 강와선생문집 <제목누락>

二十二日, 行到骨窟. 因巖爲屋者凡六, 而惟墁土開牖者前面而已. 遠視之若空中樓閣, 迫視之奇怪難名. 彼緇徒之舍平坦而趨怪異, 棄光明而樂幽險, 大抵類是矣. 
22일 골굴에 이르렀다. 바위에 기대어 집을 지은 것이 모두 여섯 채였는데, 흙을 발라 창문을 낸 것은 앞면뿐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누각처럼 보이고 다가가서 보면 기괴한 모양이 형언하기 어렵다. 저 승려들이 평범한 것은 버리고 기이한 것을 좇으며, 밝은 것은 버리고 음험한 것을 즐기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다.

6. 명암집 권5 제목누락

入吐含山, 有所謂骨窟, 卽第一名勝. 巖頭有路室, 隱隱如懸空者凡六處. 是夜坐巖扃, 伴明月, 心思茫然, 不知人間何處.
토암산에 들어가면 이른바 골굴이라는 것이 있으니, 제일가는 명승지이다. 바위 머리에 노실 노실(路室)이 있는데, 아득하게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 모두 여섯 곳이다. 이 밤에 바위 석문에 앉아 밝은 달을 마주하니, 심사가 망연하여 인간 세상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7. 골굴에 제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안경시(安景時, 1712~1794)의 시이다. 《만회집(晩悔集)》에 실려 있다.

題骨窟 

산의 뼈가 우뚝하게 하얀 태(胎)를 맺었으니  山骨穹窿結雪胞 
사람의 공력과 귀신의 솜씨가 너무도 수고했네  人功鬼斧太多勞 
사자가 벌린 크고 작은 삐뚤어진 입과 같고  獅開大小喎斜口 
제비가 붙인 높고 낮은 교묘한 둥지 같아라  鷰貼高低巧妙巢 
오르려 해도 마음과 어긋나 다리에 힘 빠지고  欲上抵捂股却軟  
문득 바라보매 기괴하여 눈 떼기 어려워라  乍看驚怪目難逃 
세상에서 특별한 경치를 이제야 감상하니  世間別物今初賞 
귀로에도 연연해하는 마음 잠시도 놓지 않네  戀意歸鞍不暫抛


8. 골굴 조선 후기의 학자 정사하(鄭師夏, 1713∼1779)의 시이다. 《안분당유집(安分堂遺集)》에 실려 있다.

骨窟 

골굴 좋다는 소리 옛날에 들었는데  昔聞骨窟好 
오늘에야 지팡이 짚고 찾아왔구나  今日一筇尋 
열두 바위가 높이 솟아서  十二巖高揭 
삼천대천세계를 굽어보노라  三千世俯臨 
층층이 기이하게 방을 만드니  層層奇作室 
걸음걸음 두렵고 놀라운 마음  步步畏驚心 
여기 와서 속된 생각 씻어버리고  入此消塵慮 
돌아가기 잊은 채 염불 소리를 듣네  忘歸聽唄音


9. 골굴 조선 후기의 학자 정동환(鄭東煥, 1732∼1800)의 시이다. 《노촌공유집(魯村公遺集)》에 실려 있다.

骨窟 

하늘의 공력으로 산에 뼈가 생겼고  天工山有骨 
사람의 솜씨로 부처님 집을 이루었네  人巧佛成家 
바위 오솔길은 가을 풍경에 저무는데  石逕秋光暮 
돌아가는 지팡이는 붉은 노을 스쳐가네  歸筇拂紫霞


10. 골굴. 곡강에 사는 상사 최천익의 시에 차운하다

骨窟 次曲江崔上舍天翼韻 

바위 깎아 비스듬히 집을 지었는데  斸巖斜起屋
교묘하게 반쪽만 서까래를 얹었구나  巧構半邊椽
길은 산허리 나무에 걸려 있고  路掛山腰樹
처마는 골짝 입구 하늘에 떴어라  簷浮洞口天
아미타불은 천고의 얼굴이요  彌陁千古面
노승은 거의 신선이 되었구나  老釋七分仙
아스라한 풍경이 한 폭 그림인데  縹緲疑看畫
석양에 안개 끼니 더욱 기이하네  添奇更夕烟



11. 골굴 이 시와 아래의 시는 조선 후기의 문인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 1748~1812)가 지은 것이다. 《치암집(癡庵集)》에 실려 있다.

骨窟 

하늘 깊은 옥 골짝에 지장보살 기이한데  天深玉洞地藏奇
여섯 석굴 푸른 곳에 만겁을 바둑 두다 六窟蒼蒼萬劫棋
고색창연한 바다가 세 번이나 개벽한 뒤 古色滄溟三變後
좋은 인연으로 시인이 다시 찾은 이 때  好緣騷客再來時
거친 이끼는 종횡으로 잔 글자를 찍어 놓은듯  荒苔細印縱橫字
여윈 잣나무엔 비스듬히 굽은 가지 자라났네  瘦柏斜生屈曲枝
난간 기대어 읊조리다 다시 한 번 웃노라니  倚檻欲吟還一笑
보건대 모두 다 작년에 지은 시로구나  看來都是去年詩
  

12.우담 정시한 선생의 산중일기중 골굴사 기행문

16일 정해 세찬 바람이 불고 안개가 자욱히 끼었다가 조금 늦게 바람이 점차 줄어들고 구름이 끼었음.

아침을 든 뒤에 순선 및 큰 절의 스님이 말과 당나귀를 몰고 왔다. 출발하려고 하는데 바람이 세차고 안개가 자욱하여 노승 해명과 채안이 머물러 있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출발하기를 청하였다. 그 말대로 출발을 하지 않고 또 석굴암에 올라갔는데, 다시 보니 더욱 기이하였다. 조금 늦게 걸어서 내려왔는데, 험준하고 가파랐다. 5리쯤 가서 말을 타고 산등성이를 지나 가운데 있는 마을을 통과하였는데, 마을의 이름이 범곡촌이었다. 암석 위에 있는 곳이라 자못 조용하고 깊숙하였다.

길에서 지림사의 스님 준환을 만났다. 15여 리를 가서 골굴암에 이르러 앞의 언덕에 올라 석봉들을 바라보니 기괴한 돌의 모습들이 가득 하였다. 층층이 굴이 있고 굴 앞에는 처마와 창, 벽 등을 꾸며 만들어 채색도 하였는데, 보름날에 채색을 마친 대 여섯 가지가 완연히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바위 사이에 걸려 있었다. 곧 법당굴(法堂窟)에 들어가 앉았는데 스님 법릉이 있다가 자리를 베풀어 맞아주었다. 조금 앉아 있다가 법릉에게 밥을 지어달라고 하고 곧 수민 및 늙은 병자 김운길과 함께 사자굴(獅子窟)로 올라갔는데 비어 있었다.

설법굴(說法窟), 정청굴(正聽窟)의 터에 들렀고, 승당굴(僧堂窟)은 비어 있었다. 달마굴(達磨窟)에 이르니 곧 수민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또 선당굴(禪堂窟)로 올라갔는데, 굴에 스님 쌍성 및 김운길의 아들 승선과 청선은 모두 나갔고 방이 매우 정결하였다. 경신과 앉아서 살피고 있는데 능선이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다 들고 나서 곧 출발하여 동산치를 넘었는데, 그 고개는 길이 험하고 매우 길어 안팎이 거의 20여 리나 되었다. 저녁에 불국사로 돌아와 불존방에 들어오니 속리산의 성희, 의섬이 이미 도착해 있어 매우 반갑게 만나 이야기하고 한참 있다가 돌아갔다. 준환이 와서 만나고, 노승 성오와 성준이 와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경루의 별실에서 잤다.

- 1688년 정시한 <산중일기> 하권, 516일 분, 골굴사 기행 편-